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자기계발](050) 강력한 힘은 하나의 결실을 맛보는 순간 재 정립해야 한다.

by eunoia53 2026. 3. 15.
반응형

목차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순간 또 하나는 상대가 무리한 판단으로 담합을 주도한 피해가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강력한 응징을 받는 순간입니다. 자기 경멸감에 스스로 무너지는 자신을 주변을 살피며, 가장 의지하고 살아가는 목표인 사람에게서부터 받은 모멸감은 여러 번 좌절하고 무너집니다. 고난과 시련에서 얻은 증오감이 개인의 서툰 감정이 모여 세력이 커진 만큼 죄와 형벌은 가벼워지는 시대입니다. 곤란한 상황은 심오한 증오감을 불태우는 심리를 조성할 것이고, 혼란을 틈타 이들은 미소를 숨길 것이다.

     

    잘못이나 실수에서 수치심으로 전개되는 상황에서 강력한 응징은 힘든 과정의 연속이 되는 회피성 성격 장애로 갈 수도 있다. 심한 괴리감에서 살아가는 현실에서 증오감을 설명할 것이고 모두가 괴로운 자신을 돌보지 못한 채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으로 맞이합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조명 효과라고 부릅니다. 심리기반으로 착취되는 범죄에 악용은 물론이고 집단에서도 사람은 혼자서는 이 사회에서 헤쳐나가기 너무 힘이 듭니다. 자신에게 앞길이 보이고 득이 될 수 있는 실이 보일 때, 걸림돌은 걸러지고 힘을 실어주는 사람은 살아남는 사회로 자리 잡았습니다. 담합 하는 세력은 시기심으로 가득 찬 눈빛으로 집단에서 행하는 무엇이든 권리를 취하는 목적으로 가치를 갖는 데 이바지한다. 힘을 가지면 포악한 성질 때문에 확실한 잘못은 득이 취해지는 성취감을 자리 잡고, 힘을 모아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이 감소하기 때문에 집단에서 힘을 쓸 때 적용되는 악랄한 욕망과 물직적 가치에 두 눈을 멀게 합니다.

     

     

    일하는 태도에서 어떤 사람은 뜬금없이 부풀리려 하는 경향이 있다.

     

     

    심리학의 거장 멜라니 클라인은 인간이 가진 가장 원초적이고도 파괴적인 감정으로 시기심을 꼽았습니다. 시기심은 상대가 가진 그 좋은 것을 눈독을 들이지 않으면 차라리 그것을 오염시키고 철저히 파괴해서 상대도 나만큼이나 불행해지기를 바라는 비열한 마음입니다. 대부분 저 사람은 품격 때문에 자극받아 내가 피해받는다면 그 사람도 비열한 인간으로 낙인찍으려는 심리가 나타내고 있고 비열한 생존 전략이자 빛나는 상대를 파괴함으로써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타인의 왜곡을 시작합니다. 이것을 뇌과학에서는 인지적 정당화라고 부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통스럽게 성장하기보다는 여러분을 깎아내려 타당한 이유로 바꿔 버리는 것에 만족해 우습게 보이는 상대를 더럽게라도 만드는 (달걀바위) 쾌락적인 생각으로 힘을 가지려는 심리를 이용하여 혼동을 주어 사람들을 포섭하려 합니다. 따르지 않으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살아남을 수 없어 다루기 쉬운 사람들을 앞장세워 논란을 끌어낼 것이고, 논란을 조성하고 그들 때문에 힘은 강력해집니다.

    자신은 호의를 가장한 베풂이요. 상대는 이용하려 한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무리하게 굴 때 내가 조금 더 너그럽게 대하면 그도 결국 자신의 잘못을 깨달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무의식은 생각보다 훨씬 더 잔인한 구석이 있어서 상대의 저 자세를 존중이 아니라 굴복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고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는 당신의 그 사려 깊은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마음껏 짓밟아도 저항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실한 신호로 읽히기 때문입니다. 웃으면서 툭 던지는 농담 속에 숨겨진 비수나 당신의 노력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당신을 작게 만드는 무시의 경멸 들이 그렇습니다. 그때 당신의 내면에서는 아주 조용하지만, 격렬한 붕괴가 일어납니다.

    당신을 지켜주어야 할 도덕심과 예의라는 가치들이 오히려 당신을 꼼짝하지 못하게 묶어 버린 셈입니다. 적이 경계선을 잘 알고 이러한 반격을 하지 않을 생각에 주도하고 담함이 시작되는 시초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정체성이 타인의 무례함과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식을 갖는 순간 당신을 하찮은 감정으로 선을 넘는 무례한 태도에서 어떠한 반응과 신호를 보여줄 것이며, 당신이 쌓아 올린 삶의 성벽이 아주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침묵을 동이로 간주하고 당신의 배려를 무능함으로 해석하며 당신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거움이 아니라 언제 터질지 모르는 밭을 걷는듯한 긴장의 연속임을 깨닫게 됩니다.

    지금 당장 이 흐름을 끊어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평생 타인이 휘두르는 기분과 말에 휘둘리며 자신의 존재 가치를 남의 손에 맡긴 채 살아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이제 그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리고 왜 당신은 그토록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어 당신의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아와야 합니다.

    자신은 결코 틀린 적이 없다는 심리

     

     

    클라인 제시하신 방어기제 중 하나로, 원하지 않는 자신의 일부분이나 내부 대상을 분리한 뒤 이를 타인에게 투사하고, 그 대상에 대해 동일시함으로써 해를 입히거나 조정하고 소유하려는 심리적 기제라고 설명됩니다. 당신이 갑자기 작아지는 기분을 느끼거나 이유 없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면 그것은 상대가 배설한 부정적인 감정 에너지를 당신이 대신 짊어지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대상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 쓰레기를 처리하기 위한 도구로 취급하는 대상 관계에 심각한 왜곡이 발생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특히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정중한 태도를 지낸 이들은 심리적 경계선이 유연하여 이러한 외부의 침입에 더욱 취약하게 노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례한 사람들은 타인의 경계를 탐색하는 본능이 뛰어나며, 당신이 보여주는 배려와 친절을 공격해도 안전한 침범의 수위를 높여갑니다. 하인즈 코의 자기 심리학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공격성은 사실 붕괴하기 직전에 취약한 자아를 지키기 위한 미성숙한 방어기제에 가깝습니다.

    이러한 공격에 노출되었을 때 느끼는 혼란은 당신의 지적 능력이 부족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부당한 요구에 정직하게 반응하는 자아의 경고신호입니다. 무례한 사람과의 만남은 당신의 인격을 시험하는 장이 아니라 당신의 심리적 방화벽을 점검하고 강화해야 할 시점입니다. 무리한 요구를 말하기 위해선 대가를 먼저 말할 것이고, 무례한 사람들은 당신이 당황하여 얼어붙은 틈을 타 주도권을 장악하려 들지만, 당신은 냉정을 되찾는 순간 그들의 전략은 힘을 잃습니다. 각 세대가 살아오며 마주했던 시대적 요구와 개인의 경험들이 이 지적인 방어들과 만날 때 삶의 질은 전혀 다른 차원으로 도약합니다. 우리의 몸이 보냈던 수많은 신호를 지혜롭게 해석하고 다스리는 법을 익히는 순간 무리한 사람들의 공격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소음에 불과해집니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 속에는 인내를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며 집단의 평온을 위해 개인의 감정을 기꺼이 억눌러야 했던 수많은 순간이 녹아 있습니다. 상대방이 던진 무례한 표현의 구체적인 의미를 본인의 입으로 직접 설명하게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거대한 심리적 발언이 됩니다. 대게 무례한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은근슬쩍 수용될 것이라는 전제하의 공격을 시도하지만, 그 의도를 명확히 밝혀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급격히 위축됩니다.

     

    품격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비겁한 평화는 삶에 수많은 파도를 넘으며 단단해진 당신의 내면은 무리한 사람들의 소음 따위에 쉽게 무너지지 않을 만큼 아주 거대하고 순고합니다. 이 작은 실천들이 당신의 일상에 뿌리내릴 때 당신은 비로소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난 채 온전한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권리를 회복하게 됩니다. 당신의 정중함은 오직 당신을 존중하는 이들을 위해서만 사용되어야 하는 고귀한 자산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사람의 품격은 알고 넘어가야 한다.

     

     

    사람마다 가지는 생각의 기준이 다른 시점으로 사람을 알아가고 생각에 따라 큰 차이가 따르고 알아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식 수준이 말을 따르게 되고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이 곁에 있는 세상입니다. 이들은 대화하는 중간에 점검하고 외면에 보이는 것이 판단할 가치를 여기게 됩니다. 어떠한 반응과 정보를 가지고 득을 따르게 생각하고 흔들리는 무엇인가 기억하고 있다. 선을 넘나들면서 약점으로 보이는 성장 과정의 모습들을 떠들고 다닙니다. 일상생활이 조급하고 인정받고 싶은 불안한 마음은 두려운 긴장감과 고통을 알지 못하고 멀리한 까닭에 경쟁이 심한 쪽으로 쏠리는 상황입니다. 절실함과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는 시대에서 불안은 전염이 되는 병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반대로 편안한 사람은 모든 자아로부터 존중하고 그들은 사람을 평가는 안 하는 모습이고 의견을 나누고 가치의 발전을 헌신하는 쪽으로 택합니다. 그게 바로 여유이고 신뢰의 형태로부터 평가받지 않는다는 느낌으로 자율성을 개방하여 현대인에게 엄청난 선물입니다. 감정을 억누르다 병이 많아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안정적이고 상대가 괜찮다는 느낌을 받아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은 부당하고 미성숙하게 표현은 금물입니다. 누군가 무례하게 굴어도 같은 수준으로 생각이 필요한 시점에서 도발에 반응하지 않고 무시해도 자존심으로부터 싸움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상대는 당황스럽고 자극에 대한 결핍이 타인마다 듣는 사람의 입장으로 개인마다 편차가 다르고, 부정적인 반응에 익숙한 존재로 인식하여 즉시 반응하지 않고 멈추는 선택이 상대가 자신을 곱씹게 되어야 서로가 불편하지 않고 대화 대신 이해를 선택하는 선택. 말로 메우는 대신 가만히 있어도 괜찮다는 선택. 설명을 길게 늘어놓기보다 단단하게 서 있는 선택들이 쌓이면 사람은 덜 소모돼 여유가 따르게 되고 사람이 안정감이 있어 보여 신뢰가 확립되어 존재감이 따르게 됩니다.

     

    타인에게 보여주는 모습에 집중하며 자신의 가치를 외부의 평가에서 찾으려 노력하지만, 진정한 자아의 평화는 오직 자기 자신과 깊은 신뢰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이 던지는 무책임한 말에서 당신이라는 깊고 넓은 통찰에서 사람마다 가질 수 있는 본질적인 고유함을 결코 훼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품격은 타인이 나를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가 나를 얼마나 정중하고 소중하게 대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