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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양아치 생각

[자기계발](047) 자기 감정이 곧 세상의 법이 된 사람들의 소름 돋는 규칙

by eunoia53 2026. 3.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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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사람을 상대하는 마음가짐을 보고 자란 가정교육은 집안 환경에서 부모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개인마다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눈치 보기가 아니라 생존 그 자체였던 과거에서 개인의 사고에 영향으로 개인 능력이 다른 인식에서 세상을 알아가기 위하여 살 떨리는 힘겨운 시대 앞에서 절망으로 가득한 세월 속의 앞으로 걸어간 사람들입니다. 살기 위한 전쟁에서 살아가고자 했던 마음은 한결같으시고 부모의 마음을 알고 배워나가는 세상에서 예의범절과 겸손을 강조하는 집단주의 문화권에서 오히려 사회는 타인에게 내세우는 체면손실에 대한 걱정으로 회피적이며 잘못과 실수에서 탓을 하는 문화, 자기 내면을 보호하기 위해 억압하고 나르시시즘 지수가 높게 나타났습니다.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고통은 인정이다.

     

     

    가장 크게 느끼는 특정한 고통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고통입니다. 현실에서 잘못을 인정할 때 느껴지는 고통은 자기 성찰에서 책임감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현실입니다. 원하는 목적의식에서 사람은 아픔이나 고통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성취목적이 강한 사람은 부족한 면이 보이지 않은 것을 중요시 생각하며, 자신을 남에게 비추어 완벽하게 포장하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자신이 달성하지 못한 성취는 자식에게 되 물림 하여 자책과 절망에서 벗어나려는 과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어느 한 집단이나 거주지역에서 신분을 내세우며 우월한 모습을 지니지만 사람을 구분하여 생활을 누리려 한다.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 경계선이 없는 가족주의로 독립된 인격체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확장된 자아로 봅니다.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 못한 희생은 나중에 여러분을 통제하기 위한 조종 수단이 됩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좋은 사람인 척 행세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편하고 만만한 상대에게 부정적 감정을 퍼붓습니다. 그리고 겸손해야 한다며 억누르는 사회. 사회 속에서는 겉으로는 웃으면서 뒤로는 타인을 조종하는 내 연적 나르시시즘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겸손한 말과 걱정하는 표정으로 착한 사람의 가면을 쓰기 시작하여 자기를 감추기 시작해요. 부모 앞에서는 조용하고 말 잘 듣는 아이, 자기 생각을 말하면 건방지다는 평가가 돌아오기 싫다고 하면 이기적이라는 비난이 돌아왔죠. 어떤 식으로든 자기를 내비치는 순간 공격이 따라왔습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게 생각하기 위해 살아가려고 합니다. 나의 내적 결핍을 나의 무의식 속에 숨겨진 욕구들을 발견하고 의식화해서 스스로 돌보게 된다면 여러분은 더 성장하게 됩니다.

     

     

     

    자기애적 성장 발달 과정

     

     

     

    부모가 배고픔을 채워주고 세상이 자기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관찰되는 순간 안착이 되는 자기애가 형성됩니다. 주어지는 상황과 경험으로 변형되는 자아는 직접 도움을 받거나 베푸는 행동에서 할 수 있는 노력과 실천을 배우고 성실히 움직이는 과정에서 인내와 끈기를 배워 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중요하게 여긴 학습은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최선을 다해 교육하는 현실이고, 인간은 자기애성 발달 과정이 없는 자아에서 내적 자존감이 원하는 목적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외부적 요인을 통제 및 간섭이 시작된다. 외적으로 만족감이 부족하면 자존감이 낮아지고 수치심분노우울감이 존재와 가치감을 증명하려 할 것이다. 자기애를 극복하는 것이 정상적인 성격 발달의 과정이므로 불안정한 정체성과 자존감을 배워가는 시기에서 솔직하고 인정하는 태도에서 달성하는 목표가 성립한다. 과정과 경험이 부족한 자아와 유전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한창 밝고 아이들은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에 울음으로 표현했습니다. 나약한 모습에 감정을 내보일 때마다 부정당했습니다. 슬플 때 안아주고 다독여 줬는데 성장하면서 유난이라는 말을 듣고 다른 아이가 무엇을 배웠고 먼저 인지한 다음 우리 자식에게 맞추는 교육으로 개인의 성장보단 타인부터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알아갑니다. 비교부터 배워온 방식이 상대방은 어떠한가 응시합니다.

    감정과 생각은 방향이 없으면 위험하다.

     

     

    자신은 정작 힘든 몸을 이끌고 힘들어도 타인의 고통은 가볍게 대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습니다. 사람은 인생 살아가는 데 기본적 요소를 지키고 사람들과 똑같이 인생 살아가는 사고의 개념이 자리 잡아 자신과 멀어지고 삶의 고통에서 주어지는 단어와 문장 안에서만 생각하는 버릇이 남아 있습니다. 타인과의 소통에서 상대방의 반응과 감정을 살핀 뒤에야 안도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정황을 판단하여 생각이 번지는 사람으로부터 타인과 집단 관계적 호응에 쾌락을 얻고 사람들에게 당연한 표현이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익숙함에 속아 집단생활에서 고유한 분위기에 속박됩니다.

    사람은 어디에서나 당신이 고통스러워할 때 위안을 느끼고 도와주거나 상대방을 알아가는 재미에서 중독되어 반감되는 상황이 오면 극심한 분노로 은근한 해방감을 느끼는 곤 합니다. 경쟁이 치열한 시대에서 고착된 문화로 자극적이고 짜릿한 쾌거는 사람의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당신의 불행이라는 먹잇감을 뜯어먹는 포식자처럼 당신의 상처를 구석구석 살핍니다.

     

    샤덴프로이데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

     

     

    쇼펜하우어는 질투는 인간의 본능이지만 타인의 불행을 즐기는 마음은 악마에 가깝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타인의 잘못과 실수를 볼 때 불행을 통해 얻는 기쁨은 고립된 증거입니다. 진심을 보일 수 없다는 사회생활에서 얻은 교훈과 깊은 통찰에 멀어져 가는 사실은 당신을 괴롭힙니다. 친절과 배려 깊은 당신은 빛나는 존재에서 어두운 나약한 인간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방어기제를 이용하여 반감을 위해서라면 증명하려 할 것이고, 자신의 위치에서 남을 비하하여 평정심을 통제하려 한다. 인간은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주변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여 구분하고 위안 삼으려 합니다. 남을 인식하고 판단하는 모임을 만났을 때 뇌는 안정감을 느낍니다. 집단에서 같이 움직이고 삶의 고통을 않고 실행하는 모임에서는 언급하는 주제가 다르며 사람에 대한 품격이 다르게 느껴집니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언급하는 당신은 덜 움직이고 편안함을 추구하며 드러나는 자세에서 자극적인 대화를 즐기며 대화의 꽃을 피워 나갈 것이다. 같이 앞으로 걸어가는 발전이 없는 관계는 서로를 몹시 여기며 낮아지는 과정을 목격하고 자신의 평범함을 특별함으로 오해하려 합니다. 당신이 겪는 고통의 깊이가 깊을수록 그들이 느끼는 정서적인 해방감의 크기도 커집니다. 당신이 무너지는 과정을 상세히 묻는 행위는 그들에게 일종의 확인 절차입니다. 다정한 태도와 조언하는 대상은 자신의 내면을 멀리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태에서 불만이 가득 찰 것이고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에서 억눌린 감정이 당신의 위기라는 틈을 타 샤덴프로이데 남의 불행을 보았을 때 기쁨기형적인 기쁨으로 터져 나온 것입니다.

    당신 가치의 안도감은 타인에게서 결정되지 않는다.

     

     

    한 번 좋은 생각을 하면 좋겠다는 과정이기도 하다. 당신은 어떠한 감정으로 하루를 상대하는가? 당신이 평온을 유지하기 좋은 방법은 나의 특정 감정 상태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관찰하면서 어떠한 감정에서 어떤 표정으로 표현되는지 생각해보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 본질을 파악하고 본성의 연약함을 확인했다면 이제는 그 에너지를 다시 당신의 내면과 외면으로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지키는 법을 익히는 과정은 결국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는 고유한 삶의 무게감을 갖추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시선에 갇힌 감옥은 절망으로 가득하지만, 자신의 인격을 나타내는 본심은 태풍의 눈 속에서 고요한 중심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당신의 내면은 비로소 단단해집니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품격 있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인간은 타인의 반응을 간섭하거나 통제가 가능한 한 행위를 하는데 심한 우월성이 자신에게만 있다는 결론에서 큰 쾌락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모여 집단을 형성하고 발전에 빠른 기여와 강력한 집단 결합력에 의한 굳건함이 더 강한 힘으로 다가온다. 시대적 중요한 삶이 만들어지고 행복요구 조건이 높아만 지고 있는 현실에서 불가능한 욕구를 내려놓는 시점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의지 하나로 이겨나가는 인생에서 꾸준한 끈기로 움직이는 사람은 행동한 자신을 대견하여 위안을 얻고 결핍으로 얻은 불행은 인간 본연의 연약함에 아픈 고통이 포함된 과정을 겪어야 한다.


     

    집단모임단체를 통해 자극받은 사람은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위해 자존감 결핍을 해소하려는 욕구를 함께 외칠 것이다. 안주하는 삶을 위협하는 세상은 가십거리에 대상이다. 진실한 모습이 가식적인 연기로 포장하려 한다.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타인을 아래에 둬야만 한다. 자신의 정체성을 오로지 피해자로만 정의합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감정을 정당한 동정을 요구할 것이고, 자기 소유화하는 사람은 보상이 있을 겁니다. 이들의 행동에는 공동의 적대감을 유지하여 남의 것을 자신도 탐욕스러운 형태에 이릅니다. 비이상적인 행동으로 보이는 상황은 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한 뒤 이상한 인간으로 몰아갑니다. 자신이 생각한 결론과 행동은 여론이 그러하면 피할 구석을 마련합니다. 잘못한 부분은 부정하여 혼란스럽게 행동을 인지합니다. (누구는 인식하는 경고인데 다른 사람은 심각한 상황으로 주장합니다.) 상황과 흐름에 기억을 조작하고 다르게 인식하는 구조로 자신도 속아 넘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감정이 곧 세상의 법이 된 사람들의 소름 돋는 규칙입니다.


    생각하는 그것이 조금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했을 때만 멈춥니다.


     

    사람은 고통의 대가인 성장에서 쾌락을 찾고 좌절에서 어떻게 해결하는 사람에게 행복이 찾아온다.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것을 보며 자신의 가벼운 짐에 안도하는 비겁함이 우리 모두에게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무거운 고통을 짊어진 자신은 마음은 한결 가볍다는 것을 배워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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