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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지낼수록 피곤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이용하고 심리적으로 착취하려는 의도를 가진 위험한 사람들은 별 의도 없이 던진 말과 행동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받아 드려서 아주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의 탈을 쓰고 접근합니다. 속마음의 가면으로 숨기고 취약점을 건드려가며 상처를 읽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처음엔 좋은 사람 같아서 믿고 따랐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모르게 이용당하고 심리적으로 착취되고 있었다는 걸 깨닫는 거죠. 자기의 마음이 누구나 중요하게 여기죠, 내 마음만 중요한 사람은 개소리를 만들기 좋은 상태이고요,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잘 현혹됩니다.
인간은 자기중심적 각자 다르게 나타나며, 근데 우리가 주의해서 봐야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특징은 자기 이익만 중요해요. 보통 정상적인 경우라면 나도 손해 보는 거 싫고 남도 손해 보면 안 되니까 고민하고 배려하잖아요.
불안정한 사람은 본인의 손해에 굉장히 예민하고요. 타인의 감정, 시간, 공간, 에너지는 안중에 없어요. 의견이 받아들여져야만 하고 공평하게 책임지는 상황에서도 본인이 되게 희생하고 배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타인의 처지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부족해요. 타인에게서 얻은 분노가 그 마음이 풀어질 때까지 괴롭게 해요. 이건 수치심에 기반한 공격성일 때가 많은데 자기 내부의 그 불완전함 느끼고, 약한 부분을 숨기고 있다가 우연히 그게 살짝이라도 건드려지면 못 참고 폭발하는 거예요. 관계를 승리와 패자가 있는 구도로 인식을 하고 벌주고 밟으려는 거예요.
수치감이 우월함에 가리려 한다.
먼저 수치심이란 어떤 일이 잘못되었을 때 자신의 행동이나 상태가 사회적 기준이나 개인적 가치에 미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경험하는 부정적인 감정으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입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수치심의 강도는 창피함에서 혐오까지 다양한 단계를 가지고 있으며, 수치심은 강도가 강할수록 자존감에도 치명적인 흉터를 남기며, 내면에 얼굴과 겉으로 표현되는 행동은 일치하지 않으며, 숨기는 사람은 늘 심적으로 불안감을 호소하며, 죽을 것 같은 두려운 생각이 많아지고, 모든 곳에서 받은 고통이 외부로 돌리려 합니다. 상대방을 알아가면서 취약점을 파악하고, 건드리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사람을 쉽게 생각하고 판단하는 책임감이 수치감으로 돌아올 때 분노합니다. 그 분노가 유지되다가 분노에 사로잡아 먹히는 기분이 들 것이며 알 수 없는 감정 상태에서 대상을 단정 지어 해결하려는 욕구가 강합니다.

수치심으로 자기 파괴적인 생각이 들고 성찰하는 순간 잘못을 인지하며, 자괴감과 분노가 감당하지 못하는 흥분 상태가 누구나 꼭 거쳐야 하는 시련의 문제로 주어지는 것 같습니다. 남을 비난하거나 모욕함으로써 수치심을 전가하여 짐을 내려놓는 무책임한 태도가 반복되는 이유는 수치심이 우월함으로 가리는 데 회피적 빠른 해소 방법입니다. 우리는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 위축되거나 자기 파괴적인 생각을 던져 버리고 모면하고자 하는 회피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과정을 인지하여 불안할 땐 응원하며 자주 만나는 사람일수록 따뜻한 거리감을 유지하여 살고자 하는 자부심을 느끼며, 모든 상황에서 당당한 자신감이 꼭 필요한 부분은 잘못한 실수에서 수치심도 느껴야 자기반성과 성장의 동력이 될 수 있으며, 사회적 책임감과 도덕성을 키우는 데 이바지합니다. 잘못에 귀 기울이고 대응하는 태도만이 성숙하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먼 미래에서도 꼭 필요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성장기로부터 교육되는 정서적 유대감
부모의 공감과 교감이 없었던 아이는 부모의 통제 속에서 좋거나, 정답만 배워나가 다른 실수나 오답에서도 배우는 통찰을 이해할 수 없으며, 권위적인 부모일수록 아이가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주지 않으면 너는 틀렸다. 부모의 감정대로 교육받은 아이는 부모가 고통받을 때 눈치를 보며 행동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자신을 억압하고 이 세상으로부터 되게 고립감으로 두려움을 느끼면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을 결국에 분노 적개심*적대감 되어 내 감정을 막 공감해 주는 가정환경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는 그런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적대감을 형성하여 계속 억누르려 하고 눈에 보이는 학우나 동료들도 억누릅니다. 이 세상과 사람들을 되게 불신하고 시기하고 미워하면서 살아갑니다.
학생은 공부만 잘하면 돼! 공부만 하고 자라온 환경에 아이들은요 다른 상황에 부딪히면 미성숙한 태도를 보이고, 꽤 실력 있는 학생 중에서 마음의 상처가 깊은 아이들은 좀 거친 말을 입에 담고 집착이 심하며 드센 감정으로 자신을 과시합니다. 타인을 무시하는 태도에서 인정욕구가 강한 현상을 자기의 눈을 통과해서 타인을 비난하고 평가하게 되죠. 내 안에 나와 사람들을 사랑해 주는 아이는 어려서부터 표현을 통하여 미성숙한 부분에서 교육받고 잘했을 때만 칭찬받는 게 아니라 솔직하고 배우려는 태도 기반으로 꾸준한 노력으로 사랑을 채워 나가는 아이로 교육받습니다.
자존감은 자신을 잊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이라면 자기감은 자신을 이해하는 능력. 자기감이 부족해서 집단 괴롭힘으로 문제 되는 시기를 나타내고 있다.
집단적 괴롭힘은 시작 전에 처음 누구나 부드러운 관계가 형성되며, 서로의 잘못이나 문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가 있다. 대부분 타인이 더 잘못했다고 느껴지며, 다른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하여 내가 이 친구를 괴롭히고 싶은 조건이 충족하게 받아드린 느낌을 설명하고 그 친구만 보면 괴롭힘이 시작되어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은 욕망을 과시하며, 주변에서 얻은 쾌락이 상대를 향한 잔인한 괴롭힘을 멈출 수 없다고 생각해 봤습니다.
그래서 집단 괴롭힘은 미성숙한 학생인 시기에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는 겁니다. 그리고 미성숙한 시기에서 자라온 환경에 머문 아이들은 집단단체에서도 심각해지면 자신 빼고 다른 사람 모두를 이해하는 능력이 부족하며, 낮아지는 자기 감의 불만이 남에게서부터 채우는 욕구가 강해집니다.
자신의 흠을 사랑하고 정성껏 들여다본 적이 있는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서부터 보이는 가치를 존중합니다.
혐오란 내게 수치심을 일으키는 부분을 타인에게서 발견했을 때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집단적*사회적 교감에서 배워온 좋은 리더십은 외향적이며, 사교성이 뛰어나 적극적이고 참여하는 다양한 사람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이끌어가는 좋다는 시선이 모두에게 통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타인에게 성향을 맞추고, 원하는 방식대로 형태와 구조를 인식하고 변형할 수 있다는 것에 배웠습니다.
우리는 너무 가까울수록 숨이 막히는 구조이며, 모든 말을 수용하는 자세가 진실감은 멀어지며, 대가로 불편함을 계속 마주해야 합니다. 20세기 철학자 에마뉘엘 레미나스는 이 현상을 “관계의 역설”이라고 불렀습니다.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은 영원한 타자이며, 완전히 이해할 수도, 소유할 수도, 하나 될 수도 없어 숨이 막히는 구조입니다. ‘다 알고 싶은 욕망’과 ‘알 수 없는 현실’ 사이의 괴리감으로 혼란이 몰려옵니다. 사랑이나 관심이 간다면 완전히 간섭하지 말고, 상대의 알 수 없음을 존중하세요. 그 순간 관계는 숨을 쉽니다.
타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의 알 수 없음까지 포용하는 일이다.
** 참고 자료 **
상담심리사웃따 - YouTube
앤드쌤의 사랑방 – YouTube
사이봄 : 인간관계 연구소 – YouTube
심리상담사 짠토커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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